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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절멸수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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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더코만도 === >[[브와디스와프 슈피겔만|난]] 네 개의 소각장 중 하나로 가게 됐지. 마치 큰 빵공장 같았단다... 가스실에서 땅 밑으로부터 환기를 위해 설치해 놓았던 파이프와 팬을 떼어내야 했었어. (중략)...'''여기선 특별한 죄수들이 별도로 작업했어. 더 좋은 빵을 받았지만 몇 달 마다 그들도 굴뚝으로 사라져 갔지.''' >---- >[[쥐: 한 생존자의 이야기|쥐]] 2부 2장 중.[* 합본 235p.] 아우슈비츠가 학살공장으로 확장되자 시신처리 같은 친위대원들 자신들이 하기 싫은 업무들도 급증했다. 이런 상황에 아우슈비츠 수용소장 [[루돌프 회스]](Rudolf Höss)는 유대인 수용자들을 모아 자기들 학살업무의 보조를 맡기기로 했다. 수용자들 일부를 차출해 특수직무반이라는 의미의 존더코만도(Sonderkommando)라고 명명했는데, SS가 학살을 위해 따로 편성한 학살부대인 존더코만도와 [[동음이의어]]다. 존더코만도의 주요 업무는 학살 피해자의 시신 처리였는데 업무 특성상 엄청난 체력이 필요했고, 이들이 저항을 했다가는 아우슈비츠 업무 자체가 마비되는지라 슈츠슈타펠은 약간의 혜택를 주었는데 그 혜택라는 게 톱밥이 덜 섞인 빵을 준다든가, 담배를 좀 더 많이 준다든가, 의료품을 좀 더 주는 등이었다. 회스의 증언에 따르면 존더코만도들 덕분에 아우슈비츠에서 유대인들의 저항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일례로 존더코만도들은 희생자들이 처음 입소할 때 즉시 살해 대상과 노동 대상을 분류하는 작업을 맡았는데 설마 같은 유대인들이 우리를 죽이겠냐며 안심했다고...[* 출처 루돌프 회스: 고백록] 하지만 혜택과는 별개로 나치는 '최종 해결책'[* [[반제 회의]]에서 결정된 나치가 학살을 공식적으로 부른 명칭.]의 증거인멸을 위해 존더코만도들을 3개월마다 주기적으로 학살했다. 때문에 900여명이나 편성되었던[* 출처 Concentration Camps in Nazi Germany: The New Histories, p.73] 존더코만도는 오히려 생존자가 매우 적어서 해방될 때는 겨우 14명만 남았다고 한다. 여담으로 존더코만도가 되어서 처음 하는 일은 가스실에서 전임자의 시신을 치우는 일이었다.[* 출처 Auschwitz: A Doctor's Eyewitness Account] 회스의 회고에 따르면 이들은 머잖아 자신들도 같은 운명을 맞을 것임을 알면서도[* 열심히 일하면 자기들은 봐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일했을 수도 있지만, 이런 학살을 위한 학살상황에서는 어쨌든 다 죽이고 나면 자신들의 차례임은 인지했을 것이다.] 매우 능숙하게 학살 작업을 처리했으며, 연고자의 시체를 발견하거나 진짜 재수없으면 탈의실에서 아직 살아있는 모습으로 상봉할 수도 있었는데, 동요할지언정 소란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아내의 시체를 보았어도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남자도 있었다. 분명 존더코만도들도 학살의 피해자인데 슈츠슈타펠의 일을 도왔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피해자들에게 멸시를 받았다. 대표적으로 수용자였던 니슬리 미클로쉬(Nyiszli Miklós)는 자신의 저서에 존더코만도를 두고 같은 유대인들이 희생당할 때 자신들은 슈츠슈타펠에게 빌붙어 혜택을 누리는 일종의 배신자처럼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존더코만도들은 만약 조금이라도 연민을 보였다가는 자신들의 위치가 정리하는 쪽에서 정리당하는 쪽으로 바뀔 것이 뻔하기 때문에 그들도 어쩔 수 없이 시체를 처리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존더코만도들도 이런 수용자들의 시선과 학살을 도왔다는 죄책감 때문에 평생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한다.[* 다만 예외는 있었다. 니슬리 미클로쉬는 유대인이었지만 의사라는 직업 덕분에 제법 대우를 받아 본인도 멩겔레의 인체실험을 보조했고, 나중에는 SS 장교에게 뇌물을 바쳐 아내와 딸을 처형 수형소에서 노동 수형소로 이송시켜 살리는 등 다른 희생자 입장에서는 존더코만도보다는 배신자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독일이 패망해가던 1944년에 거의 마지막 기수였던 존더코만도들은 자신들의 숙청이 임박했음을 감지하고 봉기를 일으킨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한다. 살아남은 존더코만도들도 전후에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는데 메타마우스에 실린 슈피겔만의 단편만화에 따르면 유대인 친목 모임에 존더코만도가 나타나자 완전히 유령 취급을 당했다는 회고가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아트가 블라덱에게 왜 저 사람을 다들 피하냐고 묻자, 블라덱이 저 사람은 살겠다고 자기 아버지와 아들을 가스실에 집어넣었다고 대답한다. 최후의 존더코만도 생존자였던 다리오 가바이(Dario Gabbai)는 2020년에 97세를 일기로 사망했다.[[https://jewishjournal.com/judaism/obituaries/314135/dario-gabbai-wwii-sonderkommando-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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